믿음의 글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2012.03.20 16:01

SH Son 조회 수:2605 추천:111



2004년 11월 10일 오전 서울 교육연수원 강당에서는 “아름다운 도전” 이라는 제목으로 특수학교 학생들의 종합학예발표회 리허설이 열렸다.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노래, 휄체어를 타고 다니는 아이들의 댄스, 소시를 들을수 없는 아이들의 부채춤과 사물놀이 공연등이 소란스런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축하무대 순서, 키가 1M 도 안되어 보이는 한 소녀가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걸어나와 피아노 의자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건반에 손가락을 올려 쇼팽의 “즉흥환상곡” 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천사의 미소를 닮은 피아노 소리만 발표회장을 가득 채웠다. 연주를 마치자 리허설 임에도 불구하고 박수가 쏟아졌다. 리허설이 끝나고 이제 막 스무살이 된 희아가 내게 걸어와 악수를 청했다. 이 소녀가 내민 손에는 손가락이 두 개밖에 없었다.

너무나 소중한 생명
1967년 희아의 아버지 이운봉씨는 포병간부학교를 수료하고 포병소위로 임관했다. 그리고 그 해에 남한으로 침투한 북한 간첩을 수색하던 중 간첩이 쏜 총에 맞아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건강하고 잘생긴 젊은이였던 그는 1급 척추장애인이 되어 보훈병운에서 힘든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희망을 잃지않고 더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당시 보훈병원 간호사였던 우갑선씨는 어느 날 잉운봉씨가 병원에서 구두닦이를 하던 고아소년에거 공부를 가르쳐주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힘든 재활훈련을 하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따뜻한 모습에 우씨는 감동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점차 친해져서 함께 산책을 가기도 했다. 두사람이 처음 영화를 보러 간 날 우씨는 영화속 주인공들처럼 의리있게 살자고 이씨에게 말했다. 프러포즈도 우씨가 먼저했다.

1977년 마침내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물론 결혼 하기전 주위의 엄청난 반대에 부닥쳐야 했다. 우갑선씨의 시아버지는 “네가 내 딸이라면 때려서도 결혼을 못하게 하겠다.”며 호통을 쳤다. 친정아버지는 인연을 끊겠다고 했다. 결국 결혼식장에 참석한 친정식구들은 어머니, 언니, 형부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부는 오히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고 뜻을 모았다. 어둡고 좁은 13평짜리 신혼집도 상이군인, 출소한 사람등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사용했다. 1985년 우씨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척추를 다친 남편과의 사이에서 임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한 채 당신 심한 독감에 걸려있던 우씨는 감기약을 먹고 주사를 맞았다. 나중에야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병원에서는 약물복용 때문에 태아에게 이상이 있을 수 있다며 아이를 지우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생명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희아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희아는 태어날때 부터 양손에 손가락이 두개씩밖에 없었다. 손바닥에서 손가락이 다섯 개로 갈라져 나간 것이 아니라 두 개로 갈라져 나가서 손가락 개수를 따진다면 모두 네 개 뿐이다. 게다가 부릎 아래로는 막대기처럼 가느다란 다리와 발만 매달려 있던 선천성 사지기형 1급 장애인이다. 세 살때 다리를 잘라버리는 대수술을 받은 후, 무릅 부분에서 앞뒤로 길게 뭉뚝한 넓적다리뼈를 발바닥 삼아 걸어다니고 있다. 그래서 조금만 걸으면 무릅이 까지고 물이 차서 주사기로 빼내야 한다.
몸의 저항력이 약해 어렸을 때부터 항생제 주사를 맞았기 때문에 단백질을 먹게 되면 두드러기로 엄청난 고통에 시달린다. “고기, 라면, 만두 같은 것을 먹으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해독제를 맞아야 돼요. 다 제가 좋아하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죠 뭐” 희아의 말이다.

그런 희아가 즉흥환상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된 것은 간호사 출신인 어머니의 노력 덕분이다. 희아가 여섯 살이 되던 해, 글씨라도 쓸수 있도록 손가락 힘을 강하게 해주기 위해 피아노를 가려쳐야겠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동네 피아노학원을 여러 군데 찾아가보았지만 어디에서도 희아를 받아주지 않앗다. 양손에 두 개씩 있는 손가락, 게다가 왼손의 손가락은 관절이 없어서 손가
락이 구부러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힘이 없어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게 불가능해 보였기 때무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근무하던 병원의 방문객이었던 조미경 선생님이 희아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 손가락으로 제대로 건반을 누르지도 못했다. 피아노학원의 다른 아이들은 희아를 보면 괴물이라고 놀려댔다. 희아는 점점 피아노가 싫어졌다.

자꾸만 꾀를 부리던 희아를 보다 못해 어느 날 어머니는 희아를 마룻바닥에 집어던졌다. 피아노를 못한다면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없다고 다그쳤다. 조미경 선생님도 희아에게 혹독한 연습을 시켰다. 희아아게 손가락도 재능도 부족하지만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희아는 피아노를 사랑하게 되었고 피나는 노력으로 놀라운 재능을 증명해보였다.

“예전에 엄마랑 영화 타이테닉을 보러 간 적이 있었어요. 주제가가 너무 감동적이어서 집에 와서 피아노로 악보 없이 그곡을 연주했거든요. 그런데 그걸 엄마가 다른 방에서 듣고 ‘환청을 하고 있나 보다’ 생각하셨데요. 제가 청음을 잘하는데 그 점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 주으이 하나라고 생각해요” 희아의 말이다.

피아니스트로 불려지기까지 희아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힘든 노력을 해야 했다. 힘없는 네 개의 손가락으로 열개의 손가락을 위한 곡을 연주하기 위해 하루 종일 피아노를 치고 또 치며 연습했다. 휴일도 없이 매일 10시간씩 지옥훈련을 받았다. 다른 아이들이 다 집에 간 뒤에도 개인 교습을 받았다. “요즘에는 매주 목요일마다 수원에 가서 레슨을 받고 있고 개인 연습은 매일 집에서 하고 있어요. 하루라도 안하면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무서운 생각이 들어요.” 그런 노력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환하게 웃으며 희아가 말한다.

또한 희아는 다리가 짧기 때문에 피아노 페달을 밝을 수 없었다. 그래서 특별히 일본에서 페달 밟는 기계를 주문해야 했다. “처음으로 ‘소녀의 기도’라는 작품을 연주하는데 너무나 난감해했어요. 페달없이는 음의 강약조절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지요. 그러다 일본 유치원 아이들이 쓰는 페달 밟는 기계를 TV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저거다 싶었지요.” 희아 어머니의 말이다. 이렇게 힘들게 구한 페달 밟는 기계는 이제 희아의 연주에 필수품이 되고 있다.

힘들게 시작한 피아노는 이제 희아의 인생에서 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희아는 1992년 전국학생음악 연주평가대회에서 와이만의 ‘은파’를 연주해 유치부 최우수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1993년 전국장애인 예술대회 최우수상, 1994년 장애극복 대통령상, 1999년 자랑스러운 서울시민상, 2003년 문화예술인상, 2004년 서울학생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또한 1997년 이희아 피아노 독주회, 1999년 청와대 초청연주, 2000년 호주 시드니 장애인 올림픽 축하연주, 2001년 이희아 자선 음악회, 2002년 사랑의 음악회를 비롯 2003년 부터 매년 미국, 캐나다에서 순회공연을 펼치는 등 수많은 무대에서 자신의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희망을 전해주는 사람
희아의 세례명은 히아친타인데 이는 포르투칼의 작은 시골마을 파티마에서 기적을 행했던 성녀의 이름을 딴 것이다. 히아친타는 이땅에 가득한 많은 죄인들을 대신해 중병으로 고통받기를 스스로 원했다. 그래서 병석에 누워 병마와 싸우다 열 살을 넘기지 못하고 하나님 품에 안겼다. 희아 어머니는 갓난아기 였던 희아의 몸이 너무 약한 것을 보고 히아친타라는 세례명을 그대로 호적에 올렸다. 그러나 곧 죽을 줄 알았던 희아는 기적처럼 잘 자라주었다.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의 이야기는 동화작가 고정욱씨의 “네 손가락의 즉흥환상곡” (1998년 한국재활재단) 이라는 책을 통해 전국 초등학교에 보급되었다. 그리고 “네 손가락의 요정 희아” (장애인 먼저 실천중앙의원회) 라는 제목의 만화도 전국에 보급되었으며, 희아의 모습을 담은 DVD, 동화, 희아의 일기등이 차례로 출간되었다.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희아의 모습을 보고 희아의 연주를 들으며 희망과 용기를 얻고 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200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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