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은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도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기적가운데 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저 평범한 남자로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꿈을 실현하고자 정진 할뿐인데… 한때 나는 택사스 대학교에 재학중인 19세의 전도 유망한 청년으로 정형외과 의사의 길을 향하여 향학열이 불 타오르고 있었다.

1981년 2월 17일 밤 나는 3년간 사귀어온 여자친구 새론과 함께 밤늦도록 도서관에서 생체화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공부를 마치고 밤이 너무 늦었기에 새론을 기숙사에 데려다 주어야 했었다. 함께 차에 오르지만 다시는 이렇게 함께 차를 타는 기회가 다시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전혀 깨달을 수는 없었다. 자동차의 개스가 거의 바닥이 였기에 학교 근처에 있는 컨비니언스 스토어에 들러서 가진 돈 $2 어치의 개스를 넣으려고 들렀다. “금방 올게” 사론에게 말하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이후의 2분이라는 시간이 나의 생애 전부를 바꾸고 말은 것이 아닌가.

가게밖에 있을 때에는 건강하고 근육질의 의과대학생이 순간 폭력이 난무하는 무법천지의 무장 강도 떼를 만나고 말았다. 가게에 들어 서는 순간 텅 비어 있는 가게에 3명의 권총강도가 내 머리에 총을 겨누고 냉동실로 나를 끌고 들어가서는 총살형을 처하는 것 처럼 내 머리에다 총을 쏘았다. 그리고는 유유자적 하게 가게를 떠나버렸다. 그러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던 사론은 3명의 이상한 분위기의 남자들이 가게를 떠나는 것을 보면서 불길한 생각이 들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점원이 두려움에 떨며 나더러 빨리 도망치라고 외치건만 사론은 가게 안을 나를 부르며 찾다가 냉동실에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너무나 일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내가 생사의 고비에 서있는 만치 중태에 빠진 것을 깨닫지는 못했다.

경찰이 도착하고 응급차가 와서 나를 보고는 살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이 되었는지 자기들도 이런 중상자가 살아 난 것을 본적이 없다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연락이 되어 가족 모두가 병원으로 달려왔다. 다음날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 의사는 사론과 나의 부모님께 수술 후에도 내가 생존할 가능성은 10명중 4명 꼴이 될 정도이고 설상 내가 생존한다 해도 걷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할 것이라 말했다 한다.

목숨은 겨우 건져서 안도하시는 부모님에게 수술 후에라도 며칠 동안은 생사를 장담 못하는 중태의 위기가 여러 번 있을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 중환자 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간 후, 얼마를 지나 병원 비행기를 타고 중환자 재활원으로 옮겨졌다.

순간 순간 졸도 하면서 몸을 전혀 말을 듣지 않는 극도의 절망감 속에 헤 메이지만 마음속은 명쾌해지며 6주가 되면서 오른 다리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고, 7주째에는 오른 팔을 서서히 움직일 수가 있었다.

8주째에는 어눌하지만 몇 마디의 말도 할 수가 있었다. 매일 매일 하루가 달라 지는 여건을 체험하면서 내 안에는 생 솟음 치는 생에 대한 열정과 희망이 싹트고 있건만, 나의 주치의는 이제 내가 완쾌되어 퇴원한다 해도 다시 대학에 돌아가서 공부를 하지는 못하고 요양을 해야 할 것 이라 말하였다. 의사의 이런 진단을 들으면서 마음속에 분노가 솟구쳤다. “도대체 그녀가 누구이게에 내가 목표를 향한 길을 한다 못한다 말한단 말인가! 그녀는 내 안에 있는 분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닌가. 내 안에 있는 분이 나를 인도하시리라”

그때로부터 2년 여 동안의 고통과 연단을 거쳐 1983년 가을이 되어서야 학교로 돌아 갈수가 있었지만 삶에 오는 절망과 절규를 극복하기란 어찌나 힘이 들던지.. 하지만 삶의 꽃을 피우며 향기를 발하기 위해서 라면 이런 정도의 연단은 넘어 서야 한다고 믿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매일 장애자 치료 센터에 가서 물리 치료를 받으면서 나보다 더욱 심각한 말 한마디 못하고 몸을 조금도 가누지 못하는 신체장애자를 돌보는 일에 동참 하였다.

나의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저명한 물리치료사인 닥터 골 께서 매주 치료를 해 주시지만 가족들에게는 나에게 발생할 수 있는 두뇌 파열 현상이 있을 것을 대비하라고 주의를 상기 시켜 주셨다. 하지만 내 안에는 이런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1마일 마다 내게 오는 엄청난 고통은, 1야드 마다 에는 상처가 되지만 1인치 의 단위로 볼 때는 견딜 만 한 따끔한 찔림 뿐이리라. 못 견딜 고통이 어디 있겠는가!”

1986년 6월 화창한 졸업식 날 나는 최우수 졸업생으로 선발되었다. 졸업생 모두가 일어나 나에게 박수의 갈채를 보내 주었다. 그리고 다음해 5월 24일 사론과 결혼식을 하였다. 9년 동안의 친구이자 연인, 환란과 절망, 그리고 불가능의 여건 속에서 나의 곁에 있었던 그녀와의 결혼. 나에게 기적을 체험케 한 장본인, 불구덩이 같은 고난 속에서 정금 같은 시련을 이겨 정결케 도와준 그녀는 어느 한 순간도 낙심하는 일이 없었다. 그녀의 믿음과 사랑이 어둠에 있는 나를 꺼내어 준 것이다.

1990년 7월 11일 새벽 12시경 사론이 나를 깨운다, 양수가 터져서 곧 아기를 낳을 것 같다고 한다. 지난날 나의 운명이 7-11 가게에서 바뀌었는데 오늘 7월 11일 나에게 하나님은 잊지 않으시고 새 생명을 안겨주셨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사론이 나를 지켜 보며 돌보아 왔는데 이제는 그녀에게 나의 진정한 사랑의 보답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15시간의 진통을 하는 동안 계속 마사지를 해 주면서 나의 손마디 마디 관절이 부서지는 고통이 있은 후에 귀여운 딸 ‘숀 엘리제’가 이세상에 탄생하였다. 오 하나님 우리 가정에 이토록 건강하고 아름다운 새 생명을 주시다니요! 저희는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수도 없는 비천하고 가련한 존재인데도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다니요!


Chicken Soup for the Christian Family Soul 중에서
“My Miraculous Family”
by Michael Jordan Segal

역자: 손승호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