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채명신 장군/장로

2014.01.1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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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신 장군/장로 (1926-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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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월남 한국군 초대 사령관을 지낸 예비역 중장 故 채명신 장로.



베트남 전쟁 당시 초대 주월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장군(장로) 87세의 나이로 작년 11 25 별세했다. 채명신 장군 영결식은 11 28 오전 서울 현충원에서 육군장으로 거행되어 국립현충원 2 병사 묘역에 묻혔다.


고인의 계급은 장군이었지만 베트남 전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전우들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장군 출신 묘역이 아닌, 사병 출신 묘역에 안장됐다.


 


장군 출신으로 장군 묘역 안장의 혜택을 포기하고, 사병 묘역에 안장이 것은 장로가 처음이다. 장군 묘역은 26.4(8) 사용할 있지만, 사병 묘역은 3.3(1)만을 사용할 있다.


 

묘비 역시 장군들은 높이 90cm, 가로 36cm 묘비를 세울 있지만, 사병들은 높이 76cm, 가로 30cm 정도의 묘비만 세울 있다.


 

채명신 장군 영결식은 권오성 육군참모총장과 박승춘 국가 보훈처장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인에 대한 묵념과 조사, 헌화, 운구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총장은 채명신 장군 영결식에서 조사를 통해 채명신 장군은 오로지 위국헌신의 일념으로 국가와 군을 위해 일평생을 바친 시대의 거인이셨다 고인을 추모했다. 총장은 장군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국가 방위의 소명을 이어갈 이라고 말했다.


  장군은 육군 소위로 임관해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육군 중장으로 예편했다. 스웨덴대사, 그리스대사, 브라질대사를 역임했다. 1961 5.16 군사 쿠테타 당시에는 혁명 5인의원회와 국가 재건최고회의에 참여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그러나 군인이 있어야 자리는 적과 마주한 전선이라며 군으로 돌아갔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에는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6.25때는 우리 최초의 특수 유격부대 백골병단을 이끌었다. 그는 1965 8 초대 주월 한국군 사령관 맹호부대장에 임명돼 3 8개월 동안 파월 장병을 지휘했다. 그가 올린 전과는 미국 언론으로 부터 2차세계대전 이후 최고 승전보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군은 한국군에 작전권을 주지 않으려다 장군의 탁월한 게릴라 전술에 놀라 작전권을 내줬다.



권위나 의전에 연연하지 않는 장로의 이런 정신은 생전에 보여준 일화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채장군은 자신의 전공이 부하들의 희생 위에서 이룬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나 그를 치켜 세우는 자리에서 한발 물러서 있었다. 그를 20 넘게 모셨던 보좌관은 장군은 병사들의 죽음에 괴로워하며 막사에서 남몰래 통곡하곤 했다 말했다. 장군은 부하들 목숨을 지키는 일을 앞세웠고 자신의 안위는 뒤로 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장교 숙소를 거부하고, 소대원들과 함께 막사에서 지내 후배 군인들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베트남 전에서 대민작전을 나간 소대원들에게 '베트콩 1 명을 죽이는 것보다 명의 주민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강조한 일화는 지금까지 군에서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자랑스런 기독교 장로


군에서 제대한 뒤에는 베트남 선교협회 초대 회장을 맡는 우리나라가 수교를 맺기 전부터 베트남 선교를 위해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채장군은 여의도 순복음 교회 장로였다. 장로가 군인으로서는 물론 일반 삶에서도 타인의 귀감이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신앙도 몫했다.

 


장로가 군인으로서는 물론 일반 삶에서도 타인의 귀감이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신앙도 한몫 했다.


 

영결식에서 기독교 예식을 거행한 김태식 목사(육군 군종실장) "신앙과 삶이 일치하기가 쉽지 않은데, 채명신 장군이야 말로 일치했던 "이라며 "정말 나라를 사랑하셨다" 말했다.

 


황해도 출신인 장로는 목회자가 되고 싶었지만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던 공산주의자들을 보고, 군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전쟁에 참전하면서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장로는 지난 2002 CBS TV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해 "목사가 되려고 했다가 군인이 것도,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이라고 간증하기도 했다 .



비록 채명신 장로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정신과 삶은 길이길이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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